[경향신문] “두 다리 잃었지만…나라는 지켰다”

[경향신문] “두 다리 잃었지만…나라는 지켰다”

다큐앤드뉴스코리아

[경향신문] “두 다리 잃었지만…나라는 지켰다”

① 그들은 왜 총을 들었나

<strong>담담하게 전하는 ‘끔찍한 기억’</strong>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가 지난 17일 키이우의 오베리흐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던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24일 자원 입대했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담담하게 전하는 ‘끔찍한 기억’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가 지난 17일 키이우의 오베리흐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던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24일 자원 입대했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자원 입대 20대 변호사 올레크
전쟁 중 대전차 지뢰 터져 부상
“러시아 포탄 공세 두려움보다
나라를 잃는다는 공포가 더 커
우리들은 세계 위해 싸우는 중”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과는 거리가 먼 키이우에서도 병사는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식당, 카페, 지하철, 버스터미널 등 일상 공간 어디에서나 군복 입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징집병과 자원병을 합쳐 약 90만명이 병력으로 동원됐다. 지난 1년간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상자 수는 최대 10만명 수준일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병역에 대한 공포와 거부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참혹한 폭력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물러서지 않는 병사들이 있다. 올레크 시모로스(25)와 니콜라이 코발(39)이 그런 이들이다. 전쟁은 변호사와 예능 PD의 손에서 법전과 카메라를 빼앗고 총을 쥐여줬다. 오는 24일 러시아의 침공 1주년을 앞두고 이들이 군인으로서 겪은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오베리흐병원에 들어섰다. ‘오베리흐’는 우크라이나어로 ‘수호자’(Guardian)란 뜻이다.

올레크는 이불을 머리맡에 말끔하게 개어놓고 정자세로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환자복 하의 아래 드러난 허벅지 절단면의 보랏빛 수술 자국이 꼭 전차 궤도 같았다. 무어라 위로를 전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는 기자를 그는 담담한 미소로 맞았다.

인터뷰 중 전쟁 트라우마가 올 것 같으면 언제든 이야기를 중단해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지난 1년간 벌어진 끔찍한 전쟁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는 법이 없었다.

올레크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다. 우크라이나에서 대학생은 기초군사훈련만 받는 것으로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 따라서 올레크는 우선 징집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는 전쟁 발발 소식을 듣자마자 훈련소로 달려가 입대 신청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는 “정말 긴 줄이었다”고 회상했다. 첫날은 무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졌다. 입대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무기보다 많았던 것이다. 끈질긴 기다림 끝에 그는 소총을 지급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시간 만에 키이우 외곽 이르핀에 배치됐다.

맡은 임무는 보병 소총수. 전장에서 죽을 확률이 가장 높은 위치였다. 이르핀에 도착한 지 1~2시간 만에 러시아의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군 경험이 없는 그가 처음 맞닥뜨린 실전이었다.

포탄에 맞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참호에 웅크리고 앉았다. 두렵지 않았냐고 묻자 올레크는 “두려웠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도시와, 나의 나라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전쟁 첫날 군 훈련소 앞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을 되뇌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독립과 국가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올레크는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두 다리 잃었지만…나라는 지켰다”

평화협상 단호히 반대한 올레크 “푸틴이 하는 일, 나치와 같아”

지난해 4월 이르핀을 비롯해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물러가자 올레크는 돈바스 전선인 크라마토르스크 인근 부대로 재배치됐다. 전선은 여전히 참혹했다. 가족이나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가는 위치를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참았다. 그는 “그것이 러시아군과 우리가 다른 점”이라며 “나와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병사들의 잦은 휴대폰 사용 때문에 도·감청에 걸려 군막사 위치가 노출된 바 있다.

두 다리를 잃는 사고는 지난해 10월 찾아왔다. 그해 10월20일 아침, 평소처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차량을 운전하던 중 대전차 지뢰를 밟고 말았다.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고, 그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하루 만에 깨어나니 드니프로의 병실이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특히 다리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꽉 묶은 지혈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두 다리는 잘려 있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쟁 첫날 입대한 아버지는 군에서 지뢰 매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올레크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에 꽂힌 호흡장치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키이우에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위안이 됐지만 그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올레크는 “다행히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누구나 이런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병원에서 재활훈련을 하고 있다.

전선에서 들려오는 잔인한 소식에 그는 누구보다 마음이 아프다. 본인이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협상 이야기에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올레크는 “러시아는 나치 독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 ”고 말했다.

올레크의 병상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공룡 그림이 붙어 있다. 친구의 여섯 살 난 아들이 그려준 그림이다. 친구 역시 현재 군복무 중이다. 그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이 많은 시민들의 응원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올레크는 “나에겐 더 중요한 미래가 있기 때문에 과거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일단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리고 인권변호사로서 꿈꿨던 사회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더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사회가 좀 더 정의롭고 평등하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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